2022년 3월 2일 재의 수요일
M로 방 안, 9일 청원기도 2일 차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며 두 곳에서 지냈다. C에서 3년, 그다음은 M로에서 현재 10년 가까이 살고 있다.
C에서 M로로 오기 전, 지역이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때가 있었다. 더는 할 수 없고 여기까지 구나라고 느꼈던 때였다. 친구가 지내고 있는 S지역을 알아보다가 마침 언니가 이곳 근무지에 합격하면서 오게 됐다. 두 곳 모두 생존이었고, 헤매고, 불안했다.
생각나는 고마운 인연들이 있다. C에서는 원룸집 주인분이시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과일을 주시거나, 집에 하자가 생겼을 때, 같은 건물 위층이 댁이셔서 얼른 내려와 봐주시곤 했다. 이사 간다고 했을 때 아쉬워하셨다. 작은 도시였지만 골목 사이사이 맛집이 많은 동네였다. 대학로 주변이라 활기가 있었다.
M로에서는 요한 신부님, 레지오 단원들이다. 이제 8년 차로 지금까지 함께 기도 드리고 있다. 아, 그리고 첫영성체 보조교사 때 인연 모니카 어머니와 요셉이.
C에서는 첫 타지 생활이었다. 대학생 때 배운 것들의 실전이었다. 어린 나이와 연차임에도 팀장직을 맡으며 내가 잘해서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모든 면에서 경험이 부족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지역에서 관계를 맺고,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했다. 팀원들 사이 안 좋은 상황도 있었지만, 후에는 오해를 풀고, 함께 여행도 갔었다. 지나고 나니 팀원들끼리 참 재밌었다. 퇴사를 할 무렵 나를 만나서 좋았다고 얘기해 주셔서 고마웠다. C에서 버릇없었던(?) 추억에 감사하다.
M로에서도 넘어지고, 부딪히고, 외로웠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타지로 가게 되면서 혼자 남게 되었다. (언니는 이제 또 다른 지역에 살고 있지만 복직을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동안의 경험과 쌓인 연차만큼 대하는 데 있어서 상황을 관찰하고, 좀 더 기다리고, 침착해졌다. 한 선생님을 가르쳐 드리면서 “아녜스 선생님 같은 분 없어요.”란 말을 들었을 때 나 역시도 잘 들어주셔서 죄송하고 또 고마웠다.
여전히 부족하고, 사람 일은 알 수 없어서 관계에서 실수를 하고, 일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전에 직장은 내가 전공한 과 일만 보고 했다면, 지금 직장은 여러 과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다양한 과 안에서 서로의 이해관계와 어색함이 있었다. 상반기를 지나 중, 하반기로 갈수록 늘 바쁘다. 여유가 없다.
초등부 주일학교 선생님들과의 인연 등, 좀 더 폭넓게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동갑내기와 함께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쌍둥이 언니가 있으니까......
2019년 뇌하수체 종양을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2020년 파티마를 다녀왔다. M로에서 오롯이 나만의 처음으로 긴 휴가였다.
작년부터는 의료봉사를 나가게 됐다.
그리고 12월, 아버지의 암 진단을 받고, 나와 소중한 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M로에서 살면서 번아웃이 왔다.
더는 이곳에서, 직장에서든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내어 놓고 인정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됐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모두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잠시 짧게,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온전히 나 자신으로 걸어왔는지.
지금 있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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