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한국에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씻고, 가방을 겨우 정리한 다음 완전 뻗었다.
여정 내내 날씨가 좋다가 떠나는 날 소나기가 내려 비를 쫄딱 맞았고 (우산이 뒤집어졌다. -_- )시차와 긴장이 풀리니 피로가 엄청났다. 종일 잤는데도 부족하다. 포르투갈로 가기 전날, 당일까지도 이런 시간을 가져도 되는 건지, 지금 나에겐 사치가 아닐까. 파티마에 가면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까.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신앙생활에서 주의하는 부분이 있는데 잠깐만 반짝이는, 그때뿐인 신앙인이 되지 않으려는 거다. 재작년에 참가했던 KYD도, 교구에서 하는 다양한 청년 피정들, 조용한 곳을 찾아 성지 순례를 가는 것도 좋지만... 다만 그 안에서 색다른 걸 쫓아가기보다 하루의 일을 시작하고 마칠 때 드리는 기도처럼 평범한 일상 안에서 신앙 행위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똑같다. (앞에 교구 행사, 피정들이 안 좋다는 게 아님, 특히 조용한 성지는 정말 좋아함. )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삼라와 만상에게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최인호 인연
인연 책에서 처럼 사람의 관계, 주위 풍경,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소소하지만 삶에 하찮은 인연은 없는 것.
내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다. 그래서 포르투갈 여정도 똑같이 일상을 걸어가는 거라고 여기기로 했다.
좋은 마음을 느끼게 해 준 풍경들에게 감사했다. 특히 좋았던 건 각 지역마다 이른 아침을 보아서 좋았다. 늘 일찍 출근하는 게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포르투갈에서도 새벽 5시가 되면 눈이 떠졌다. (직장인 알람 3개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나름 여유 있게 준비를 하고, 체크 아웃을 하기 전에 잠깐 나와서 조용한 거리를 걸었다. 특히 파티마에서 일출과 일몰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버스가 있지만 걸어 다니는 코임브라 학생들의 존경심이 들었던 언덕, 브라가의 하늘과 나무, 물 그리고 순례길, 리스본 알마다 골목 사이사이 사람들의 삶의 흔적, Cristo rei에서의 시선.
익숙지 않은 길을 이동하는 도시 간, 마을 교통은 역시나 어려운데 그럴 때마다 희한하게도 도와주는 손길들이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한 이에게 응원을 받았고, 처음 만나는 분이 주신 물건에 큰 도움을 받았고, 서로에게 길을 공유해 주었다. 묵었던 숙소에서 나를 좋게 봐주었던 주인집 분들, 침착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메일로 받은 음악과 유쾌하시고 듣고 있는 내내 미소 짓고 마음이 찡했던 시간.
걷고, 가는 곳마다 도와주시고 고마운 분들, 부족함과 미안함을 느끼게 해 준 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동안의 스치고, 곁에 있는, 새로운 인연들을 위해서도 기도드렸다. 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늘 감사한 삶의 소중한 인연, 벗들.
가족 : 이번 일정을 계획을 다 해놓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출국하기 전 주에 부모님이 건강 검진으로 올라오셨는데 다시 고향에 보내 드리고 나서 많이 울었다. (요즘 눈물이 다시 많아지는 것 같다. -_- ) 전보다 약해지신 모습을 뵈니 마음이 아팠다. 다 같이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사치라고 느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졸업을 하고 나서 독립할 때도 부모님께 지원을 부탁드리지 않았다. 부딪힐 때 힘들었지만 살아 계시고, 신앙의 삶을 부모님을 통해 건네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고마움을 늘 표현하고 전해드려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 : 말 잘 안 듣고 -_-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성모님과 같이 기도하는 소박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 묵주 손에서 놓지 말고 올해 300차 함께 가요. 걱정됐는지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이 드문 (없는 -_-) 프란치스코가 잘 도착했냐고 톡을 보내왔고, 한국으로 입국할 때도 다들 조심히 오라고 마스크 꼭 쓰고 다니라고 기도해 주셨다. (웬일이십니까. ^^;ㅎ)
요한 신부님 : 신부님은 제가 주님께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마음을 열 수 있게 도와주셨고, 저뿐만 아니라 지금 계신 곳에서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빛이 되어 주시고 계시겠죠? :-) 우리에게 신부님을 보내주셔서 주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첫 글자를 적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고, 눈물이 핑 도는 좋으신 신부님. 저도 신부님께 받았듯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요. 보고 싶고 그만큼 늘 기억하며 기도드립니다. 노래 덕분에 침착하게 언덕 무사히 잘 올랐어요!
Anna 수녀님 : 완전 팬이 되었다. (부담스러우실까.) 수녀님께서 알려주신 파티마의 메시지. 여운이 진하게 남아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쌩쌩 불어도 다시 들을 수 있어요. 묵주 기도를 더 소중하게 느낀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쾌함 안에 담긴 진심이 참 좋아요.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이라이스 자매님 : 파티마에서 함께 보낸 인연. 사진도 찍어 주시고, 포르투갈 일정을 서로 공유했다. 가끔씩 주고받는 톡에서 서로 빵 터졌다. ㅎ 청년 성서 요한까지 다 끝내셨다고. (부럽, 대단) 추운 날씨에 지친 내게 핫팩을 주셨다. 아껴두고 안 쓰고 있다가 갑자기 포르투에서 복통으로 힘들었는데 자매님이 주신 핫팩으로 괜찮아졌다. 포르투갈 하늘 아래 파티마 동지가 있다는 게 든든하고 정말 고마웠다.
진심으로 응원드리는 도미니카 자매님.
포르투갈 사람들 : 교통을 놓칠 뻔하고, 물건을 잃어버릴 뻔했는데 (왜 또 그러니...) 그때마다 도와주는 손길들이 나타났었다. 레데 버스 위치를 잘 알려주신 우버 기사, 파티마 숙소 늦은 시간 기다려준 친절한 데스크 직원 (윙크 계속 하심) , 환승이 어려워 미소와 함께 자세히 설명해 주신 기차 직원, 브라가에서 물건을 주워주며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여자분, 버스 번호를 못 찾고 있는데 안에 타고 있는 어떤 어머니께서 손으로 숫자를 알려 주셨고, 벨렘 지구 제로니무스 수도원 미사 참례에 흔쾌히 도와주셨던 직원 신자분 & 멋진 성가 들려주시고 함께 사진 찍은 성가대. 귀여운 아들과 함께 살고 계신 코임브라 &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리스본 숙소 주인 분들. 알마다로 가는 배 안에서 "당신은 매우 아름 답습니다."라고 말을 걸어준 잭슨.
함께 일하는 병원 선생님 : 비행기 일정으로 하루 OFF를 낼 수밖에 없었는데, 제가 없었던 시간을 채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열심히 일 할게요.
파티마를 떠나고 코임브라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 숙소 바로 옆에 성모님 성당이었고, 포르투에서 아프고 다음 날 브라가에서 예수님의 부활까지 칼에 찔린 고통과 늘 곁에 계셨던 어머니를 뵈었고, 리스본에서 지금까지 모든 여정을 보호해 주셨던 어머니를 뵙고, 마음이 뭉클했다. 성모님을 따라가니 좋으신 예수님을 만났다.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딸이라서 다행이다.
좋다. :-)
포르투갈 일상 안에서 인연들을 통해 함께하시는 걸 느끼게 해주신
최고의 벗인 주님 감사합니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감사함도... 모두 다 감사드려요 ^^;
"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 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
(시편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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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1요한 4, 8)
다음 글 : 여정 내내 나와 함께했던 물건들 (고생이 많았다.) 다 쓰려고 하니 너무 길어진다.
포르투갈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꺼낼 예정. 감사한 인연들 먼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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