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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노래하듯이

기억하는 자장가 그리고 씨앗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묵주

며칠 전 묵주를 잃어버린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었다. 하루를 마감하며 기도를 드리려는데 묵주가 안 보이는 거다. 깜짝 놀라 시간을 더듬으며 기억해 보았다.  새벽 출근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그 당시 내가 막 싫어지려고 했었음-_-; )

 

 

성물에 집착을 하면 안 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묵주는 처음 9일 기도를 했었고, 전에 계시던 신부님께서 본당을 떠나시기 전 주셨고, 레지오 회합, 지하철 안, 직장, 조깅을 할 때, 조용한 방 안, 힘들고 가장 좋았을 때 늘 함께 했던 나의 오랜 손떼가 묻은 묵주이다.

한밤 중에 뛰어가서 묵주를 찾고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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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2-3회 정도면 하면 되지 않나, 그리고 한 달 넘짓 기도를 중단했을 때가 있었다.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안에서 드는데 기도상 앞에 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 모양 이 꼬락서니인데^^; 드리는 기도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오랜만에 묵주를 다시 손에 쥐었을 때 깨달았다. 이 마음마저 어여삐 받아주시고, 피하고 싶은 것까지 다 내놓는 거라고. 결국엔 횟수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내놓는 거였다.

그 이후부터는 습관적이기보다는 자연스레 거르지 않고 기도를 바치게 됐다. 그리고 기도가 어렵고 힘들 때 늘 다른 방법으로 다시 이끌어 주셨다. 여전히 매 단 예수님의 생애를 제대로 묵상하지 못하고, 나의 지향이 더 크고, 분심이 들 때가 많지만 ^^;;; 바쁘고 할 게 많더라도 묵주기도를 한다. 멈추는 법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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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4학년 때 세례와 첫영성체를 받았다. 가톨릭 신자가 없는 집안에 어떻게 세례를 받게 되었던 걸까. 씨앗은 엄마였다. 중학생 때? (다시 물어봐야지) 성당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듣고 혼자 찾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냉담을 하게 됐고(그때 만난 제일 친한 친구분이 계신다.) 오랜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지금 나의 고향에서 어릴 적 함께한 수녀님을 다시 만나셨다고 한다. 그때 우리 가족들은 가톨릭 신자가 될 수 있었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 성당에 나가지 않았고, 이사를 가게 되면서 더 멀어지게 됐다. 지금까지도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개종 및 냉담 중이다. 늘 마음 한 구석에 그리움과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다시 성당에 나가고 싶다고 엄마한테 얘기를 했었고, 근심이 있을 땐 성호경을 긋고, 기도를 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었고, 어느 순간 회의감과 어떠한 계기로 더는 안될 것 같아 용기를 내서 혼자라도 다시 나가게 됐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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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도에 첫영성체반 보조교사를 했었다. 몇 번 거절을 했지만, 마음이 찜찜해서 기도 중에 한 번 더 제의가 들어오면 하겠다고 했는데, 진짜 다시 연락을 받았다. ㅎㅎㅎ 3번의 제의로 그 해에 봉사를 하게 됐다. 

성당에 다시 나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교사를 한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 주일은 꼭 미사 참례를 하려고 성당을 가기에 주말에 고향으로 내려오지 않는 내가 가족에게 소홀히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주 5일이 아니라 토요일 일 끝나고 고향을 내려가면 다음날 올라오기 바쁘고, 힘들어서 내려가지 못한다는 핑계로 제대로 못 챙긴 것도 사실 맞긴 하다. 나 역시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서운함이 들었다. 

첫영성체 교리는 가정 교리라,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교리를 받아야 했는데, 봉사하면서 내가 받았던 때의 어릴 적 기억이 많이 났다. 자모회 봉사를 하셨던 엄마와 함께 누워 외웠던 긴 기도문, 가족들과 참례한 성탄미사.

 

 

거의 1년 가까이 교리를 듣는 신자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부러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안한 마음과 부모님의 마음을 돌아보게 됐다.

교리가 끝나고, 첫영성체 예식 전 주 엄마가 올라오셨다. 좋아하시는 (중요) 고기집에서 얘기드렸다. (일단 먹는 상태에서 얘기를 해야 덜 어색할것 같았다. ) 사실 보조교사로 봉사를 했고, 어릴 적 기억이 많이 났다고.  그리고 가톨릭 신자가 한 분도 없던 집안에 엄마를 통해서 신앙을 선물 받아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돌아오는 대답은 고기나 먹어라 였지만, ㅇ_ㅇa 미소를 띄고 계셨다.

 

묵주 기도에는 수많은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 알랑 드 라 로수 복자 

 

야고보 동산 나무에 걸려있던 한 초등부 어린이가 쓴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묵주 기도를 제일 좋아하는 것도 엄마의 영향이 컸다.  :-)

자식들이 불이 꺼진 거실에서 자고 있을 때, 홀로 초를 켜놓고 성가정상과 성모님 앞에서 우리가 깰까 봐 작은 목소리로 하셨던 묵주 기도.

나는 그때 깨어 있다는 걸 알리지 않으려고 자는 척했지만 그때 상황과 목소리를 기억한다. 나에겐 지금도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자장가이다.

더는 가족들이 냉담 중이고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하지 않다. 엄마에게서 받은 기도로  이제는 내가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 건강도 챙겨드릴 수 있고, 자주 연락드리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거다. 그리고 요즘은 공감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받아주시는 상황이 됐다. (평화의 인사 시간에 함께 참례한 가족들을 보면 불쑥 외로움이 오긴 하지만 ^^; )  

 

 고향집에 있던 성모자상

 

의견이 충돌될 때가 있지만, 나를 제일 걱정해주는 건 가족들이니까. 그리고 무엇을 염려하시는 지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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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세례를 받지 않아 모태신앙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주님께서 엄마에게 심어 주신 신앙의 씨앗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전해졌다. 

지금도 온전히 꽃 피우기 위한 과정이고,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좋은 씨앗을 전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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