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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생명의 말씀

2021 나의 四旬詩期 여정

四旬詩期 : 주님 수난과 부활의 빠스카 성삼일 준비하는 시기.

재의 수요일 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사진 출처 : Fatima 유튜브

 

2. 17 재의 수요일

하느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


2. 18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주님,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치고 도와주시어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마치게 하소서.

-매일 미사 본기도


2. 19 재의 예식 금요일

드리는 기도와 봉사의 희생은 온전히 주님의 것. 그분의 시선으로 실망하는 마음 단식하기.


2. 20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몇 주 전 제 확신이 주님보다 컸음을 바라보게 됐어요. 부끄러웠지요.

세리들과 함께 있는, 제자들에게 투덜대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충돌하는 갈등 상황 같으면서도 그들에게(제게도) 회개를 바라시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오늘 독서 말씀 ㅜㅜ

또한 오늘도 죽음으로 한 걸음 내딛으시는 발걸음에 우리 또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니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죄에서 하느님으로 건너감.

나에게서 하느님으로 건나감.

죽음을 마주하며 가는 것.


2. 21 사순 제1주일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신 건 성령, 하느님의 뜻이다.

제가 들어선 광야를 둘러봅니다. 잠깐 주춤했지만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는 말씀을 되새깁니다.

유혹과 시련만이 있는 게 아니라 곁에 묵묵히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혼자가 아니다. 

주님보다 컸던 부끄러운 제 확신도 숨기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인 여기에서 그분의 은총을 느낄 수 있다는 믿음을 청해봅니다. 그리고 한 발 내딛습니다.


2. 22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작년에 요한 신부님이랑 통화에서 이 복음을 나누어 주셨었는데 기억해 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주님께서 함께 계셨기에 가능했으며,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은 이미 우상 숭배가 되어있던 곳이었다.

우상숭배와 부족한 베드로지만 그곳에서 교회를 세우고, 곁에 계시며 함께 가고자 하셨다.

 

저는 깨끗하지 못한 상태예요. 그렇지만 지금 그대로 그분께 다가갈 것이어요. 여러 부족한 모습을 보인 베드로와 나병환자는 몸의 병과 마음의 상처 있는 그대로 그분께 다가갔어요.

스스로 노력하고 깨끗해져서 갈 수 없으며 또한 모든 것. 제 병에 대해 건네주셨던 말과 시선, 저의 얕은 생각과 말과 행위로 드린 상처, 주님의 뜻은 없고 하고자 하는 욕심과 관계의 대화,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에 주관적인 판단은 내려놓아야 할 마음이에요.

기도 지향에 앞서 어떤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오직 말씀.

이 길은 오롯이 나를 만나는 길이고 나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

그때 다시 고백할 수 있을까요?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 그대로 안아주시는 그분께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갑니다. 


2. 23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주님,

제가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 24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회개할 만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는 사람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

표징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이루어진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

없음을 탓하는 건 나의 몫이 아니며, 청하며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


2. 25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약을 복용하고 지금까지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 파티마에서도 그랬다. 묵주를 잡고 기도를 드리려는데 "주님 이 병 낫게 해 주세요"란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 마음이 내가 믿음이 부족한 걸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부모님께 어떻게 알려야 하며... 여러 가지 해야 할 것들이 걱정이 됐다. 그래서 처음 드렸던 기도는 

"주님 저 이제 어떡하죠?"였다. 잘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그때의 기도가 주님의 뜻을 묻는 기도였으며

그 뜻은 조금씩 조금씩 나의 기도 지향이 되어 다가왔다.

주님께...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아 오늘 바오로딸 성경 통독과 매일 미사 시편이 같아서 기억하며 함께 남긴다.

당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시편 51,14)


2. 26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약을 추가하게 된 날, 집에 돌아와서 때마침 울린 핸드폰 알림을 확인하고선

책상 앞에 앉아서 한없이 울었었다. 며칠을 기다린 답장은 거절이었다.

서로에게 감사함을 많이 느꼈던 만큼 지금도 마찬가지로 늘 응원드리며, 그 마음 변함없이

주님께서 건네주신 신앙의 삶 안에서 각 자의 위치에서 걸음걸음, 그렇지만 함께 걸어가요.


2. 27 사순 제1주간 토요일

내가 바치는 예물만 흠 없을 일이 아니라, 흠 없는 예물과 어울릴 것. 기도의 시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물을 바치는 것, 기도를 드리는 일 모두 나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다.

완전함... 품어야 할 건... 하나뿐인 마음이에요.


2. 28 사순 제2주일

화살처럼 다가와 마음을 찔렀을 때  그 말에 대해서 대꾸하지 않았다. 

마음이 아팠지만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인격적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고, 또한 상대방은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은 주님의 손길이다. 병에 대해서 건네준 말과 시선들, 받은 위로와 주고받은 부족한 대화들 모두 다 소중하다. 지금 여기까지 온 것도 그분의 은총 없이는 올 수 없었다.

 

주님, 이 제사로 저희 죄를 씻어 주시고

저희의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시어

파스카 축제를 합당히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미사 예물 기도>

또한 부족한 많은 제가 당신을 닮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3. 1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병을 진단을 받기 전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다.

그때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기억하며.

자세한 얘기를 꺼낼 수 없으니... 마무리합니다.^^;


3. 2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나는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를 위하여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우리 선서문 첫 번째 조항이다.

말씀에 자리와 행실에 대해 나와서 생각이 났다. 삶에서 우리의 위치는 누군가에게 권력이 되고 특권이 되는 자리가 아님을 배웠다. 권위는 봉사에서 비롯됨을. 복음을 들으면 늘 일깨워주신다. 오늘 말씀도.

나 역시도 보이고자 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것들이 있다.

Aㅏ… (잠시 깊은 한숨)

전에 레지오 단원들에게 나누었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간에 각 자에게 주어진 부르심은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의 길이라고 (아마 다 까먹으셨을 거야...ㅠㅠ) 말씀에서처럼 우리를 낮아지게 높여지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분 앞에서 우린 다 같은 형제이다.  

죄를 지었을 때 용서를 청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기도드릴 수 있는, 부족하지만 봉사할 때 나를 통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 말씀을 듣고 이루어진다는 믿음.

모든 것들이 주님의 도움과 은총 없이 나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3. 3 사순 제2주간 수요일

그동안 지금까지 건네주시는 모든 것들에 바로 네 라고 다 응답하지 않았다. 몇 주 전가까지도 마주하지 않았나... 주님보다 내 욕심이 더 컸음을. 어렵고, 돌아서고 싶은 힘듦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뒤늦게 깨닫고, 깎아내고, 내려놓고, 참모습을 보며 조금씩 변화되어 가면서 완성해 나간다. 기도도 마찬가지로.

다시 나와 주변을 돌아본다. 섬김은... 서로에게 하느님의 말씀, 그분의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이 마음은 후배들을 가르쳐 줄 때 많이 배웠고,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하면서도, 병에 대해 위로를 받았을 때 (어떠한 관계에서든지) 느꼈다. 예수님은 용서와 치유를 보여주셨고, 하느님의 나라를 약속하셨다.

영광스럽게 되신 건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순종하셨던 십자가를 통해서다. 하느님의 말씀과 계획이었고, 예수님은 그 길을 걸어가셨다. 우리의 몸값으로 목숨을 바치러 오신 그분의 사랑... 십자가가 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건 십자가가 있다는 것이고,  밝혀주는 길이고, 우리를 살리는 함께하시는 은총이다. 


3. 4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죽은 이가 살아나야만 회개할 수 있다면... 말씀을 믿지 않았거나... 특별했던 경험만 쫓으면 작은 믿음의 마음조차 간직하기가 어렵다. (경험...) 소소한 일상 안에서 말씀을 읽고, 기도를 드리고, 작은 노력과 선택들, 매일의 성찰들은 오늘을 새롭게 다시 살아가게 된다.

삶은 믿음이다.

오늘 글을 쓰면서 지금 필요한 원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3. 5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좀 짧게 기록해야 하는데...)

나의 매일 미사 읽는 법은 성경 앞 뒤 내용 읽기, 잘 모르면 줄 긋고 본기도부터 복음 환호송까지 다시 읽기, 단어 뜻 사전 찾아보기다. 

오늘도 순서대로 복음을 읽었다. 23절부터,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와 백성의 원로들이 찾아와 권한을 문제 삼았고,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상황이다. 밑줄을 그은 부분은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마태 21, 37)

존중의 뜻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과 영어 어원을 찾아봤다. ^^; 아는 단어라도 자주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말실수 예방과 (바른말 고운 말 노력해요.) 단어 하나로 묵상하게 되기도 한다.

 

주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존중하기 위해서 오셨구나, 세상을 살게 해 주신 선물을(포도밭) 욕심내지 말고 존중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열매 맺기를, 그들에게 (수석 사제와 원로) 하는 말씀이지만 우리는 주님께 빚진 사람들이고, 강한 고집을 부리고, 잘못된 선택을 한다.

어제 깨달았던 원의... 지금 여정을 이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모퉁이의 머릿돌.

비유 말씀대로 엄청난 죄에서... 선으로 이끄시는, 붙들고 계심을 믿으며 존중과 용기 잃지 않기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단어 뜻 찾기(찾다가 뭐 하고 있는 거지? -_- 싶다가도...)

1. 존중, 존경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높이어 귀중히 대하다.

2. 영어 어원이 신기했다. Respect , 세 부분으로 찾았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1) 라틴어 네이버 사전 respícĭo : 뒤돌아보다. 바라보다. 관계되다.

2) re(다시) spect(look의미) : 다시 보다?  

3) respite가 respect를 어원으로 만들어진 프랑스어이며 사실상 둘이 의미는 같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 존중의 의미가 파생됐을까?

spite 악의, 나쁜 마음 (=malice), 같은 의미 despiteous -> despite/in spite of  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어서 고통을 완화하거나 채무가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주는 것, 숨을 돌리는 의미

respite에서 연결된 단어 respire 호흡, rest, breathe, break

프랑스어 répit : 쉼, 숨 돌리다, (채권자, 집행) 유예  - 외국어 공부하시는 어느 분 블로그에서.


3. 6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첫토요일 신심

오늘은 첫토요일입니다.

어머니 성심에 머무르며 주일을 준비하렵니다. 물론 복음 말씀도 함께요.  

18 : 36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 (루카 1, 47)


3. 7 사순 제3주일

채찍질이  아파서 울고, 감사함으로 느껴질 때까지 늘 시간이 걸린다. 지금도. 

오늘 잠시 멈추어서 물어본다. 열려있는지? 혹 물질적인 것을 들고 가고 있는 건 아닌가? 기도하고 참회하며 자비와 용서를 추구하는 곳인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인지? 나와 다른 이들이 드나들고 만날 수 있으며 어려움과 소외됨을 나누는 곳인지? 

채찍질은...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마음의 성전이... 하느님 만을 품으신 성모님의 찬양처럼 (어제)
주님만을 고백하고 기쁨을 노래할 수 있기를... (나의 블로그 --> 노래하듯이)

느려도 헤매도 좋으니~♫  


3. 8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삶은 단순하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 하고 싫어하시는 것 안 하면 되는데...

내 안의 빛이 인도해주시는 대로 걸어가자.

십자가를 구원이라 여기며, 있는 그대로 안고.


3. 9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마음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였다.

충분히 주셨다.
조금 더 가볍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3. 10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은  22일 (반 정도 걸었다. 성삼일까지) 

율법은 더 깊은 삶을 향한 초대이자

십자가의 사랑은 율법을 은총으로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이다.

 

고스란히 섬기면서 실천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 걸음 굳건하게 주님을 뵙는 기쁜 마음이게 하소서.


3. 11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주님을 신뢰하기에

왜곡됨과 나의 변덕스러움을 내려놓는다.

 

다음 날 덧붙이는 글 :   (루카 11,17)  하나의 사건을 함께 지켜보았더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나아가 각자의 결론을 내린다.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는 그들에게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끄신다. 

섣부른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소문에 휩쓸리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보고 신중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그러니 그분의 소리를 듣도록 하자.


3. 12 사순 제3주간 금요일

하느님을 '사랑' 하는 것.
끝까지. :-)


3. 13 사순 제3주간 토요일

혼잣말로.

하느님을 부르지만 그분을 향하지 않는 기도가 있다.

본인 만족을 위한 기도라든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대화도 마찬가지로.
블로그 기록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드리는 기도 끝에는 누가 있는지 늘 성찰하기.
주님,

일상 안에서 드리는 작은 기도들, 일을 하며 공부를 하는 것... 모두 당신께서 이루소서.


3. 14 사순 제4주일 (제의 분홍색 따라서 )

어느덧 4주간이다. 사순시기 여정을 기록하면서 또 하나 느낀 건 좀 이르긴 하지만 새 해에 드린 기도(링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글 마지막에 쓴 본질적이 되는 곳. 그곳은 하느님의 뜻이고,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것.

있는 그대로 빛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걷고, 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삶.

십자가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삶이 힘이다. (오늘 복음 구절 캘리그라피) 그 사랑의 힘으로(2020. 6. 11) 아멘


3. 15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주님 뜻 안에서 인내와 끈기, 용기 잃지 말기.

덕분에 주어진 새로운 하루 일과 공부에 감사하며.

(매일 감사 일기 쓰기)


3. 16 사순 제4주간 화요일

7년 차가 되었다. 누가 내게 물어본다면...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감사하다고 말할 것 같다. 거의 내려놨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기도의 소중함과 성모님의 따뜻한 품, 하느님 안에서 쉼의 의미를 알게 해 준 곳이다. 거짓말과 무관심이(또한 무시) 얼마나 아픈지, 불평하고 부족했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 걸 배웠다. 내게 필요한 인내는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이고, 목표 지점까지 걸어가는데 필요한 인내, 하고자 하는 끈기다. 혼자 꾹꾹 눌러 담을 자리는 더는 없단 걸 작년에 깨달았다. 여러 가지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다. 탓도 핑계도 더는 없다.

쉼을 믿으며  "일어나 네가 들 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요한 5, 8)


3. 17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블로그에 말씀 일기를 제대로 기록한 적이 없었다. 전에 피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바오로 딸 수첩에 적은 성구들, 사진에 적은 캘리그라피가 주였다. 사순시기 여정도 원래는 올해 계획에 있지 않았다.

2월 첫째 주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고, 두통이 있었다. 짤막하게 쓴 일기를 다시 정리하면서 마주한 불편한 마음을 더는 지나치는 것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2021. 2. 15) 묵상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다가온 말씀을 온전히 내 것으로 꺼내서 이곳에 담아야겠다고 여겼다. 성경을 다시 처음부터 읽고 듣자는 마음으로.

병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시간이 좀 더 필요했었다.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더 자세하진 못했더라도,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말씀은 하느님과 나를 긴밀하게 결합하게 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을 듣는 것이 생명으로 인도해 주시는 힘임을 보여 주신다. 

말씀과 함께 지금 여정을, 나의 삶을, 일기를 담는 것.

신뢰하고, 구원을 믿어야 하는 지금이 바로 그 때다.(요한 5, 25)

 

덧붙이는 글 : 가끔씩 티스토리 유입 키워드에 같은 병명을 가진 분이 검색해서 들어오신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어제는 또 누군가가 환자에게 힘이 되는 성경 구절을 검색해서 들어오셨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기도로 응원드립니다. 


3. 18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작년 포르투갈에서 여행 일기장을 잃어버렸었다.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찾지 못하고 리스본으로 넘어갔다.

한국에 돌아와서 몇 달 후 기적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하와이에 사시는 어느 분이 일기장을 주으셨고, 한국 친구에게 번역을 부탁해서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나를 찾고는 연락을 주셨다. 비활성 계정에다가 메신저만으로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신기했다. 비용 없이 보내주신 도착한 택배에는 일기장과 마스크, 사진엽서 뒤에 편지가 적혀 있었다. 필기체에다가 글씨가 많이 번져있었고,  얕은 영어 실력으로는 다 해석을 못했지만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쓴 글, 그림을 보고 분실물 센터에 맡겼다가는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직접 전해주고 싶으셨단다. 많이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하셨다. 그리고 보내 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셨다. 일기장 맨 앞에는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적었다. 여행 일정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미안함, 그리움. 주님께서 나와 우리가 함께 하시는 삶이 담겨있다. 다시 받았을 때 감동을 잊지 않고 있다.

일기장을 들고 다니는 건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포르투갈 일기장이 다시 돌아왔던 것처럼 지금이 기적이고, 

말씀에 머무르며 예수님과 나와 우리가 함께 걷는 지금 삶을 믿는다. :)


3. 19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잘 참는다거나 꾹꾹 눌러 담는 것이... 인내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루어 가시도록 침묵으로서 내맡기는 것이다.
성인의 참된 겸손을 통해서 배웁니다. 

오늘 영명축일 맞이하신 모든 분들 축하드립니다.


3. 20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또 주의하는 점은 내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단정하고 판단하지 않기. 

나와 우리 가운데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삶이고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다.

본질적이 되는 곳...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 안에서 배워야 할 인내가 향하는 것은 그동안 몇 번이나 언급했는데...

마음이 느껴집니다.


3. 21 사순 제5주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27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한 12, 24-28

 

남은 사순시기 가르침을 잘 정리하고 기억하며 묵묵히 길 위를 걷기.


3. 22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지난 화요일에 (3/16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을 고쳐주시기 전에 "건강해지고 싶으냐? (요한 5,6)라고 먼저 물어보셨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요한 5,9) 치유되기 전 남을 의지하거나 탓을 하는 경향으로도 좀 보였다. 

건강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상태가 튼튼하고 치유하는 뜻이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완전히, 온전하다, 순종의 의미까지 담겨있다. 

나는 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쁜 건 환자분이 모든 치료가 끝나고 기쁘게 병원 문을 나설 때이다. 치료가 시작되기 전 서로에 대한 관계가 중요하다. 우리가 알려드리는 주의사항을 잘 지켜주시고 모든 걸 믿고 따라와 주실 때,  의료인으로 환자분들께 올바른 설명과 안전한 진료를 행하는 것. 서로에 대한 건강한 믿음의 관계는 건강한 기쁨이 된다. 처음부터 혹은 중간에 불신이 생기거나, 거짓된 진료를 행할 시는 치료가 중단되고 심각한 경우에는...

최선을 다 했지만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사람에게도, 여자에게도 마지막 말씀이 비슷하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요한 5, 14)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 11)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관계가 건강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지금까지 모든 말씀도.

자기의 것을, 서로를 건강하게 인정하고 그리워하면 되는데 자꾸만 숨기려고 공격하고, 무관심하고, 피하고, 탓하고, 의심하고, 판단하는 돌 같은 마음으로 대하니... 던지는 돌은 우리다.

 

건전하고 의지가 굳세다.라는 말도 건강하다는 뜻이다. 나병 환자가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을 믿고 담담히 나아갔던 믿음. (재의 수요일 전  주일 복음 2/14, 복음은 계속 이어진다고 믿는다.)

 

건강하게 인정하며, 존중과 쉼을 믿으며 나아가자. 곧 성주간이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 11)


3. 23 사순 제5주간 화요일

고해성사 임할 때가 된 것 같다.


3. 24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 기도, 하고 있는 일, 학업, 관계, 걷는 길

그 안에는 주님을 향한 앎이 있는지 꼬~옥 아녜스야~

지금 사순시기의 여정도, 앞으로도 건강하기를 (3/22 건강에 관한 글) 일상과 건강.

 

흘러가는 대로 단순하고 소박한 행복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늘 품고 싶다. 너무 멋있다. ㅠ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 32)


3. 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예수님께서 말씀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머니께서 본보기를 보여주신다. 

오늘은 나의 방 안에 있는 성모 영보 액자 앞에 머물기. 


3. 26 사순 제5주간 금요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다. (요한 1, 14) 

우리... 마음 안에 계시다.

오늘 복음을 통해 떠올랐던 구절.

 

(+) 추가 밑줄 그은 구절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요한 10, 40)

요르단 강 건너편. 이 지역에 대해서 12월 말 신명기를 읽으면서 묵상을 좀 했었다.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활동 한 무대

후계자 여호수아가 사명을 시작하는 곳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

예수님

구약의 미완성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참된 구원의 완성자 이심을.

 

부활이 되면 바오로딸 통독 계획표는 나머지 요한복음을 읽고,

구약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12월 성탄에 신명기로 마치게 된다.

그리고 다시 1월부터 신약.

목적지는 다시 시작점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나는 지금 여정의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고,

그 시작 점에서 나타난 새로운 길을 또 걷는다.


3. 27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주님의 방법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내 생애 깊이 개입하고 계신다는 걸 믿으며 모두 내맡기기.

 

또한, 오늘 이 시로 마무리해 본다.

 

인생길을 걷는 우리가 하나 되어 걸어감으로

언젠가는 다 함께

당신 앞에 서고 싶습니다. 

 

 

사진 출처 : VATICAN NEWS 유튜브

 

3. 28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하느님의 육화와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분의 고통스러운 수난과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

한 분 예수님에게서 밝히 드러납니다.

온통 그분입니다.

제 앞에 죽음을 내놓습니다.

그분처럼 죽었을 때 그분처럼 부활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슬프지만 기쁘게 이다음으로.


3. 29 성주간 월요일

허물을 닦아주시려고, 지금까지 걸어왔음에 감사드리며

소중한 걸 내어주는 겸손된 사랑의 향기는 함께하는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밝히는 향기가 퍼져나간다.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향기가 온 존재에 묻어난다.

잊지 않고, 잃지 않고 동행합니다. 


3. 30 성주간 화요일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품 안을 듣고자 했던 걸까? 늘 그렇게 들으셨을까?

요한 사도의 모습은 예수님과 영적인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유다가 선택한 돈이라든지, 신앙을 순간적인 감정과 열정만 앞서게 된다면... 또한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베드로는 바로 곧 깨닫게 된다. 어려운 순간이든 어떤 상황에 주님의 사랑보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두는 것, 머리로만 이해하려는 것.

베드로의 고갯짓으로 더 다가가 물어보았지만 (25절)

그는 그때 예수님의 마음을 들으셨으리라. 그리고 어머니의 품을.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며 십자가 아래 어머니(요한 19, 26-27) 곁에 서서 모든 순간을 함께한다.

 

가엾은 마음, 산란한 마음을 다시 드러내신다. 

어제의 나르드 향유와 오늘

이제 곧 나에게도 다가올 십자가에 이르는 길을 물어보시는 것 같다.

원의와 첫마음을 다시 기억할 때다.


3. 31 성주간 수요일

그분을 모른 척하는 순간이 다시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는 헤매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완전히 망가진 것을 알고, 잘못된 사랑을 하며, 하느님의 뜻에 벗어난 길을 걸을.... 수... 도

 

그럼에도 이제는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다.

 

또한 그분 품에 안겨야겠다 생각을 떠올리기 전부터

그분은 나를 찾으실 분임을

기다리실 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