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열매는 내가 모르고 있었음에도 침묵 속에서 성장하고, 묵상 속에서 열매를 맺어 어느 날 내 곁에 기적으로 나타났다. 내가 겨울 내내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 열매는 스스로 낙과하여 침묵 속에 썩어갔을 것이다.
***
기쁨과 행복은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는 것에 있다.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마음의 뜨락 어딘가에 나무를 심고, 그 나무에 향기 좋은 모과가 자라도록 물 주어 기르고 있다.
모과나무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내가 보았으므로, 그리고 느꼈으므로 그 열매는 모과로 내 곁에 왔으며, 그 향기는 내 곁으로 풍겨온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 아니겠는가.
한 해도 저무는 세모의 저녁,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한 벌의 헌 옷도, 한 닢의 동정도 베풀지 못하면서 내가 감히 말씀드릴 것은, 여러분 가슴속에 자라고 있는 행복의 꿈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에 매달린 향기로운 과일을 따보라는 것이다.
모과나무 열매는 그 해 가을 무렵 모두 따서 거실의 광주리 속에 담았다. 땅 속의 풍경에 대해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최인호 <인연>
'산책 - 시와 글, 책, 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때 (0) | 2019.08.29 |
---|---|
사랑하는 벗이여 ✢ (0) | 2019.02.28 |
나도 (0) | 2018.07.10 |
앤에게서 배우기 (0) | 2018.06.20 |
버팀의 기도 (0) | 2018.04.21 |